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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고교 재학 중 학생회장에 출마하였고, 전교조와 관련해 사회문제에 일찍 눈을 떴으며, 대학생활로 더욱 더 진지한 모습으로 운동을 고민해 왔다. 동지는 짧은 커트에 안경을 쓰고 목포출신답게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던, 친구들에겐 색화선지를 곱게 붙여 편지를 쓰고 샴푸와 린스에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다고 비누로 머리를 감으며 하이타이도 퐁퐁도 콜라도 손 안 대던 작은 환경주의자였다. 신 전날 4월 28일 목포 집에 가서 부모님을 끌어안고 “가족들을 사랑한다”며 해후 한 뒤 “내 서랍에 코스모스 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주라. 항상 함께 하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