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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2004년 5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전국여성노동조합 부산지부의 간부로, 민주노동당의 운영위원으로, 분회장으로 낮밤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활동한 우리들의 모범적 일꾼이었다.
별로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교육과 조직을 위해 부산지역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으며, 민주노동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분초를 나누어 활동하였다.
이경희 동지는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여 조국과 민중을 가슴에 새긴 이후로 줄곧 이 땅의 자주와 통일, 참다운 노동자 해방세상을 안아오기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히 한길로만 걸어 왔다. 부산경남 인의협 간사로 사회운동에 첫발을 내디딘 후로 부산문화센타에서도 제 몫을 다하는 간부였다. 이후 학습지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고통을 확인하고 우리 사회의 약자인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삶을 살 것을 결의하고 실천하였다.

이경희 동지는 전국여성노동조합 부산지부에 문을 두드린 이후부터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무엇을 더 하지 못해 미안해하고 자기보다 동지를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임신중독증세가 심해져 입원을 하게 되었고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딸의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2004년 5월 28일 숨을 거두게 되었지만 이경희 동지는 여성노동자의 벗으로, 믿음직한 간부로, 동지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