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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광주직업훈련원을 마치고 ’89년 대우조선 조립2부 선수미과에서 일하였다. 당시 사측은 단체협상 과정에서 구사대 성격을 띠는 ‘상록회’를 조직 노동자들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파업을 할 경우 병역특례자 2백여명을 군에 입대시키겠다’는 등의 노조 탄압을 자행하였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노동운동에 대하여 급진불순세력이라 규정하고 ’88년 후반기부터 노동계를 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또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 ‘불법노사분규에 대한 집중수사 방침’을 시달하는 등 노동문제를 공안문제로 몰고갔다.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노동탄압속에 노조 소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진석 동지가 정권과 사측의 이러한 태도에 항거하여 분신하였다. 5월 29일 저녁 10시 40분경 ‘노동자를 노예화하는 경영자의 노조탄압을 규탄하고 동료들의 원직복직과 임금인상 쟁취를 이루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기숙사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하여 옥포 대우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