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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어려운 생활과 농업문제 해결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고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동지는 양심과 이성에 비추어보아 자신이 목격한 동족 살인의 민족적 비극을 알리지 않으면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점차 꺼져가는 서울의 민주화 열기에 다시 불을 붙이고자 결심한 것이다. 동지는 ’80년 5월 30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던 정기 금요기도회를 시위 날로 잡았으나 그 곳은 자주 시위가 있던 곳인데다 그날은 시위를 예상하여 일방통행마저 금지시킬 만큼 경계가 삼엄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요기도회는 취소됐지만 시위를 결행키로 한 동지는 12시경 회관에 들어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작성하고 6층의 폭 1m 베란다를 건너서 창문 밖으로 떨어져 운명하여 계엄군에 의해 시신이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