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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2년 3월 서울대 무역학과에 입학하여, 서울대 학술동아리 ‘대학문화연구회’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83년 10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유인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같은 해 11월 3일 학생의 날 학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관악경찰서에 연행되었다. 또한 ’85년 6월 29일 구로공단 내 대우어패럴 근로자들의 농성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김해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다가 ’86년 7월 4일 만기 출소하였다. 북파공작 특수부대원이라는 박모씨는 “’86년 여름경 학생운동을 하였던 안치웅이라는 대학생을 납치·살해한 후 저수지에 수장했다”고 서울방송(SBS)에 제보하였으나, 박모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여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도 거의 진상규명이 되지 못한 상태이며 가족들은 아직도 애타게 동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