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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누이의 가슴팍을 도려내고 죄없는 민중을 난자한 학살원흉이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권좌에 앉아, 그 피묻은 손으로 ‘민주’를 떠드는 비극적인 땅! ‘명예회복-보상’ 운운하며 또다시 광주민중항쟁을 능욕하는 학살원흉 노태우와 ‘진상조사는 하되 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보수야당이 피의 광주를 놓고 벌이는 정치야합과 88올림픽의 휘황찬란한 팡파레 속에 ‘환경미화’란 미명으로 이 땅 민중들의 생존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88년 당시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동지는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분단올림픽 반대, 공동올림픽 쟁취, 6·10 남북학생회담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그러던 ’88년 6월, 민중해방의 신새벽을 앞당기기 위해 싸웠던 동지는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제 한 몸 불살라 학살원흉에게 민주의 불벼락을 내렸던 것이다. “저의 뒤로 저와 같은 죽음이 뒤따라서는 안됩니다”라는 절규로 우리 모두의 투쟁을 촉구하며 ’88년 6월의 불꽃으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