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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인천시 청소 기능직으로 일하다가, 당시 사회단체와 연관된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퇴사를 종용 받은 후 자진 사퇴하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다. 그렇지만 자활의 꿈, 취업의 희망을 놓지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원시에서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2005년 8월25일 택시와의 교통사고로 인해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전북대학교 병원과 남원의료원에서 수술 및 입원 치료를 하였으나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택시공제조합측(보험회사)은 후유증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아, 전주 노송병원 등에서 힘들게 치료를 해왔었고 이 후유증으로 2006년 3월 27일 지체(척추) 6급 5호, 종합 장애등급 6급으로 장애인 판정을 받게 되었다.

동지는 전북지역 내 다양한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했으며,민주노총 공공노조 전북평등지부 조합원 (2008년2월)으로 가입했고,서해안 기름피해 100일 행사, 한미 FTA 반대운동, 한반도 운하 백지화 운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개혁과 참여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일관되게 개진해 왔으며 지역단체와 함께하거나 독자적으로 묵묵히 활동을 펼쳐왔다. 2008년 광우병 논란이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온라인상<이명박 탄핵투쟁연대 범국민운동본부 전북지부> 회원으로 참여하며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해 왔으며, 촛불시위의 자원봉사자로 홍보물을 배포하거나 시민단체를 순회하며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그러던 중 전북 전주 코아백화점 앞에서 분신하였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두차례에 걸친 피부이식수술을 받았으나, 2008년 6월 9일 끝내 운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