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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부터 박정희는 일본과 굴욕적인 외교를 벌이면서 불평등한 한일경제협약을 맺으려 들었고 전국의 애국학생들이 들고일어나 데모에 돌입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6월 3일, 서울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발악적인 무단정치에 돌입하였다. 대학생들을 연행하고 학원규제법을 만들어 학원의 자유를 유린했으며 언론규제법을 만들어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였다. 이에 도예종도 검거하기 위해 추적하던 중 임민혁명당의 연락책이었던 동지를 연행하기에 이르렀다. 동지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연행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도예종의 비밀거소를 사수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내 한 몸 희생하면 되겠다는 각오를 굳히고 이층 창문으로 돌진하여 낙상하여 경추 3과 4가 골절되고 중추신경의 손상을 입고 전신마비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 5년간 투병하다가 운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