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심.jpg 

동지는 1949년 10월 전북 부안군에서 1남 8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맏딸로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돌보며 어렵게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상경하여 어려운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파출부 일을 시작하였다. 1969년 한국카톨릭노동청년회(JOC)에서 활동가 선서를 통해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갈 것을 결심였다. 태광산업, 혜양섬유, 동방섬유 등 노조지원을 하다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기도 한다. JOC 서울 북부지역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던 중 요시찰 대상으로 활동이 어려워지자 지역을 인천으로 옮겼다.

1975년 인천지역 노동자들을 지도하며, 동일방직 해고자의 생계와 활동을 지원하였다. 1978년 부평가톨릭 노동사목에서 노동자 지원활동을 하던 중 만성복막염에 의한 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였다. 1979년 6월 14일 ‘용기 잃지 말고 항상 기쁘게 살고 어려운데 먼저가서 미안하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