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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52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남양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집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서울로 올라와 ’74년 김선엽씨와 결혼하여 ’79년 12월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였다. ’80년 8월 13일 말다툼 과정에서 동대문구 이문파출소에 신고·연행되어 청량리경찰서로 이송된 후, ’80년 7월 29일 국가보위입법회의 삼청계획 5호 및 ’80년 8월 4일 발동된 계엄포고령 13호에 따라 재판절차 없이 삼청교육대 분리심사위원회의 심사에서 B급 판정을 받고, 삼청교육대에 입소되어 순화교육을 받고 근로봉사를 하였다.

보호감호처분을 받고 사단 감호분소에 수용되던 중, 군 지휘관들의 폭행을 계기로 감호생들은 정식재판을 받게 해줄 것 등 13개 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하며 집단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정당한 요구에 대해 군은 M16소총과 M60기관총을 발사하여 과잉진압, 6명에게 총상을 입혀 그 중 동지가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