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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71년 5월 25일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일 당시 전남 목포시 대성동 1구투표소에서 선거관리부위원장으로 근무하던 중, 투표용지가 1백장이 부족한 사실을 발견하고, 시 선거관리 위원회에 보고한 후 “단순한 사무착오이니 그대로 투표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고 무사히 투표사무가 완료하였다. 개표결과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이 야당인 신민당에게 패하게 되자 야당이 이 투표지 1백매를 절취하여 부정투표를 했다고 소송을 제기하고, 문제의 투표용지 부족사실을 처음 목격한 동지를 서울에 있는 참고인과 대질신문하기 위하여 경찰간부 2명, 공화당 간부 2명과 함께 야간열차로 상경하던 중 전북 김제역 부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의문사위원회는 어떤 형태로든 자백상황을 계속 유지하려는 경찰관들 또는 공화당 관계자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는 과정에서 경찰관 및 공화당 관계자들로부터 폭행 등 외력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하여 동지가 타의에 의하여 열차에서 밀쳐져 떨어졌거나, 갑자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을 모면하려다 열차에서 이탈, 추락하여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