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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당시 광주 전남지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상징적 역할을 하였던 계림교회에서 대학부 회장으로 재직 시 이 교회 대학부 1, 2학년들의 사회 과학 세미나를 이끌었고, ’85년 ‘계명인의 밤 행사에서 사회 비판극인 ‘금관의 예수’에서 예수 역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문화적으로 기여하였다. 건국대학교 영자신문에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하였으며, 4·13호헌조치에 항의하여 삭발 단식 투쟁을 하였고, 6월항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집회 시위에 참여하였고, ’88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우회장 자격으로 6·10남북학생회담에 공식적 차원에서 참여하였다. ’88년 6월 20일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신 후 “가슴이 답답하다, 자고 싶다, 들어가 쉬어야 하겠다”라고 말을 한 후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 그로부터 3일 후 기숙사 방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되었다. 동지가 숨진 채 발견된 기숙사 방문 및 창문의 잠금장치가 안으로 잠겨 있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는 등 아직도 의문의 죽음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