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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7년 6월 18일 부산 좌천동 오버브릿지 시위에서 전경들이 다연발탄과 직격탄을 쏜 후 오버브릿지 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시위대가 지나간 뒤, 오선숙씨 등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4명(남2, 여2)이 지나가는 승용차에 태워서 대연동 재희병원으로 후송했다. 병원의 시설미비로 밤 12시경 다시 봉생병원으로 옮겨 신경외과에서 뇌수술을 하였으나, ’87년 6월 24일 저녁 8시에 운명하였다.

’87년 6월 25일 부산대 병원에서 부검을 실시하였다. 부검결과 직접적 사인은 뇌좌상이었고 오른쪽 이마 윗 부분에서 정수리를 거쳐 후두부까지 20.5cm에 이르는 종방향 두개골 골절이었다. 그 외 신체 어느 부위에도 일체의 외상이 없었다. 부검 후 22밤 10시경 시신을 연산동 시립 부산의료원 영안실로 안치하였다가 ’87년 6월 27일 밤에 범일성당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