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관.jpg

’84년 학원자율화조치로 수배 해제되어 학회건설에 노력하던 동지는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역량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며, 젊은 지식인으로서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당시 동지는 구로지역을 거쳐 인천으로 가게 되고, 주로 목재단지 근처에 방을 얻어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목재 노동자회와 인노회, 인사련의 활동을 통해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통일 그리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는 활동을 앞장서서 전개하였다. ’91년 6월 27일 1시경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에서 정기총회를 준비하던 동지는 새벽 1시 50분경 인천대 공권력 투입소식을 접하고, ‘인사련’도 침탈당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럴 경우 총회자료가 압수당하게 되고 조직에 대한 큰 타격이 예상되어 이를 막으려 급히 사무실을 나오다가 3층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렸으나, 실족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