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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1년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던 동지는 대학 1학년 때 민속문화연구부에 가입하고 선배와 함께 탈연합회에서 활동하였다. ’82년 부천에서 야학 활동을 하기도 했다. ’83년 1월 부천의 야학에서 활동한 선배의 조사과정 중 동지의 이름이 나오자 성동경찰서는 동지를 끌고가 조사를 하면서 구타를 가했다. 조사 이후인 4월 1일 수원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늑막염이라는 병으로 군대를 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다음날인 4월 2일에 경찰서에 오라는 소식을 듣고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강제로 군에 끌려가서 입대 후 훈련소에도 가지 않고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직접 군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해 진술해야 했다. 7월 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통보가 와서 형님이 가보니 두개골이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육군 사단 신병교육 훈련 중 보안부대에서 1주일간 ‘녹화사업’ 심사를 받았으며, 이때 운동권 동료들에 관한 진술을 강요받았다. 녹화사업 심사 후 보안사령부는 동지에게 프락치 활동을 종용하였다. 실제 6월경 프락치 활동을 명목으로 주어진 휴가로 서울에 왔으나, 자신으로 인해 타격받을지도 모르는 운동권 선후배들은 만나기를 피했고, 죄책감과 앞으로의 프락치 활동 요구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워하다 극도의 자책감과 부담감에 시달리던 중 더 이상의 보안사 공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83년 7월 2일 훈련 중 벙커에서 자살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