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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0년대 서울로 올라와 줄곧 인쇄 노동자로 살아왔다. 그는 ’91년에는 서울 인쇄노조 쟁의부장과 대의원으로 열심히 활동했고, 사회당 추진위 성동지부 회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서노협 선봉대 활동도 했다. ’93년 고향인 충주에서 베아산업에 취업해 이듬해 ’94년 임금인상 투쟁 과정에서 해고됐다. 이후 동지는 ’94년 8월 삼영화학 청주공장에 입사해 생산5과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삼영화학노조는 회사 측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였고, 그는 장기적인 구상을 가지고 현장 내 활동을 조직했다. 그러던 ’95년 7월 2일 야간에 기계를 분리해서 점검하던 중 폭발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도의 전신화상으로 인한 호흡기와 폐가 타버린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같은 해 7월 3일 8시 운명했다. 동지의 짧은 삶은 모범적인 노동운동가의 삶이었다.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했으며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주위의 동료들을 항상 잘 챙겨나가는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아직도 그를 만났던 많은 동지들의 가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