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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대학에 입학해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사진 전시회, 비디오를 보고 집회에 참석하면서 동지는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사회의 외곽지대, 무풍지대에서 살아왔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됐다. 동지는 ’86년 2학기부터 실천적인 인간이 되려고 현실의 중심부에 뛰어들었다. ’87년 6월 9일 오후 5시쯤, 연세대 앞에서 시위도중 30~40여발의 최루탄이 난사되고 교문 앞은 자욱한 연기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희미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한 동지가 쓰러져 있었다. 한 학생이 동지를 발견하고 뛰어가서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동지의 머리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동지의 피격사건은 전국으로 알려졌으며 학생, 시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궐기하기 시작하였다. 6월 항쟁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학생들은 낮이면 거리에 나가 돌을 던졌고 밤에는 병원으로 돌아와 동지의 주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동지의 소생을 비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동지는 최루탄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하지만 동지의 죽음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줬다. 물러섬 없는 투쟁은 때론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해 수백 수천만이 마침내 깨어나 거대한 폭풍처럼 불의와 억압, 착취를 쓸어버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