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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7년 8월 동료 이기만씨와 함께 파업을 주동한 후 회사 측의 계속적인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87년 12월과 ’88년 2월 두 차례나 부당해고를 당했으나 동지와 그의 동료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복직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기만씨가 자신의 복직투쟁을 도와준 혐의로 2월 2일 해고되자 자신의 일보다 더 열심히 복직투쟁을 전개했고, 결국 노동부와 지방 노동위원회에서도 복직판정과 복직명령을 받게 됐다. 그러나 강원탄광측이 이를 무시, 거부하자 6월 22일 이기만씨는 단식에 돌입했고 동지도 동료들과 함께 복직투쟁에 참여했다. 이기만씨의 생명을 건 단식 8일째인 6월 29일 “이대로 두면 우리의 이기만이가 죽는다”며 동지는 동료 5명과 함께 휘발유 1통, 석유 1통을 들고 노조사무실에 들어가 문 2개를 못질하여 폐쇄하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12시반경, 두 차례나 문을 뜯고 창문을 깨고 구사대원들이 진입을 시도하자 동지는 “들어오기만 하면 분신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이 “할테면 해봐라”고 무시하며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난입했고 동지는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불을 그었다. 동지는 화염에 싸인 채 “부당해고 철회하라” “인권탄압 중지하라”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가 노조 앞 큰길에 쓰러져서도 “강원산업에 제발… 민주노조 좀… 건설해 주십시요”라며 절규했다. 동지는 온몸 75% 3도 화상을 입고 10일간 죽음과 싸우다 7월 8일 아침 7시20분 끝내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