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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4년 충남대학교에 입학하여 ’87년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면서 전대협 결성을 주도하여 전대협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동지는 충청지역대학생 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충청지역의 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또한 당시 민주헌법쟁취, 직선제 개헌투쟁에 충남대생 1만인 대전역 진출 시위를 주도하면서 6월 항쟁의 전국적 기폭제 역할을 했다. 동지는 ’87년 12월 12·12 군사 쿠데타 규탄시위 주도로 체포되어 구속되어, 출소 이후에도 자주, 민주, 통일 전선에 다수 민중의 단결된 힘이 절실하다고 판단, 후배들의 활동을 지도했다.

’88년 10월 대전충남 민족민주운동연합 상근실무 간사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89년 5월 노태우정권의 청년 운동가들에 대한 새로운 탄압술책인 강제입영을 거부하고 열악한 지역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수배 하에서도 민족민주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청년들의 모임 ‘대전새길청년회’ 창립을 주도했고, 지역청년운동의 통일단결을 위해 ‘충남민청’과의 조직통합에 앞장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90년 12월 노태우정권의 신공안정국 조성과 수배로 인한 신변상의 위협으로 서울로 거처를 옮겨 막노동을 하면서 변화된 방식으로 활동하던 중 ’92년 10월 10일 새벽, 수배 중 얻은 천식으로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