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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기아산업에 20년간 몸담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민주노조를 만들려는 조합원들의 뜻에 따라 대의원으로 나서서 활동하면서 회사와 어용조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누구보다 앞장섰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6.29 선언에서 밝힌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은커녕 ’89년 4월 공안합수부를 만들어 오히려 해고노동자를 양산하는 기만적인 민주노조탄압을 자행하여 112신고만으로도 파업사업장에 공권력을 투입하고 사측은 이에 편승하여 민주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갖은 이유를 들어 가차없이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 ’89년 1월 18일 경 사측은 민주노조를 염원하던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아 위원장에 출마했던 활동가를 이력서 허위기재라는 이유로 해고했다. 당시 민주노조 건설을 염원했던 현장 활동가들은 ’88년 8월 9일 농성 투쟁 등을 통해 어용노조를 퇴진시키고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정권의 노동운동 압박과 사측에 부당한 개입으로 어용집행부가 다시 만들어지게 되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해고라는 탄압을 받고 있었다. 이에 동지는 사측에 부당해고라며 철회를 요구하였다. 몇 달간 동지가 해고의 부당성을 계속 주장하자 사측은 ’89년 7월 3일 몇 달이 지나도록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동지를 해고 조치하했다. 이에 동지는 7월 3일 11시 50분경 외주물품야적장에서 ‘부당해고자 전원복직’ ‘민주노조 건설’을 외치며 분신했다. 동지는 광명 성애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화상이 심하여 7월 18일 끝내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