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jpg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동지는 일차 문무대 훈련 당시 시위를 선동하고 노래를 선창하였다는 이유로 문교부 리스트에 기록된 뒤 연행되어 조사를 받다가 강제징집을 당했다. 그리고, ’82년 7월 23일 의문의 죽음을 당하여 강제징집, 녹화사업으로 인한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동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달려간 가족들은 병참모부에서 빈소를 보게 됐다. 군 당국에서는 사고 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이어서 현지답사는 불가능하다며, 가족들에게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 사인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81년 흥사단아카데미와 학내에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는 조직에 가입해 활동하다 11월 25일 학내시위에서 연행돼 동료 14명과 함께 강제로 입영됐다. 부대생활 중 지휘계통과 보안부대의 관찰, 면담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사망하기 전 입대동기가 사신관계로 보안사령부에 구속됐고, 학교 선배가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범으로 오인되어 보안사령부에서 조사받는 과정에서 동지와 학교동료들을 언급, 경찰과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또한, 동료들에게 죽음을 예시했고, 전방실습생에게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과 장영자 사건에 대해 물었다. 군 동료들과 소대장, 중대장, 보안부대 병사 등은 휴가 전후 동지가 보안부대에 호출되어 갔다고 하나 보안부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