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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흥진 노조는 100여일간에 걸쳐 파업투쟁을 벌여왔다. 파업초기에 회사 측은 ‘파업을 풀고 정상운행을 하면서 노사협의를 하자’는 주장으로 일관해 왔다. 회사 관리자인 협상을 회피하기 위하여 회사에 나오지 않기 시작하며 ‘정상운행을 하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주장만 해왔고 구사대 임무를 띤 조합원들이 선운행 후타협(회사의 주장과 일치) 주장을 앞세우며 차량을 탈취하고 이를 막는 조합원들에게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7월 30일에는 50여명의 무리를 만들어 조합사무실을 폭력으로 점거하였고 8월 2일 사업장 한쪽 구석에 천막을 치고 노숙하고 있는 조합 집행부 및 조합원과 그 부인들에게 사람으로선 할 수 없는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이에 동요하지 않자 전등을 절단해 소등을 시켜버렸다. 이에 동지가 단신으로 회사 건물 전등을 켜라고 항의하자 구사대들은 각목과 쇠파이를 들고 몰려나와 동지를 무차별 폭행하여 실신케 하였다. 동지는 2차례의 뇌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89년 8월 5일 운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