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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민주화열기가 한창이던 ’80년에 대학에 들어간 후 곧바로 성균관대의 대표적인 이념써클의 하나였던 ‘동양사상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83년 5월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학내의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첫 감옥생활을 시작하였고, 출소 후 동지는 줄곧 부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86년경 반제동맹당 사건의 여파로 수개월간 도피생활을 했으며 ’88년 3월 창립한 인노회 결성에 산파 역할을 했다. ’89년 2월 검찰은 6공들어 처음으로 ‘이적단체구성죄’를 적용하여 동지를 비롯하여 인노회 관계자 6명을 구속했다. 약 20여일에 걸쳐 조사를 받은 동지는 수사관들이 잠을 안재우거나, 안기부에 넘기겠다고 협박하는 등 정신적 압박감이 극에 달하는 수사과정에서 동지는 극심한 불면증, 실어증에 시달렸고 증세가 악화되어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세’라는 진단을 받았다. 출소 이후 신경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으며 건강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후 상태가 다시 악화되고 ’90년 8월 7일 오전 9시 30분경 분신,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