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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전남 목포 출생으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현실의 모순을 알게 되었고, 졸업 후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 노동자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미싱을 배워 노동현장에 취업하였다. 그는 부평 공단의 우진상사와 진영물상 등 주변 봉제공장에서 활동하다 해고당한 후 동료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생산 공동체를 만들었다. 동지가 사망하기 전까지 동지의 모든 것을 바쳤던 ‘미모사’는 가장 긴 시간을 일하면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았으나 인간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봉제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동조합 결성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생계를 해결하고, 스스로 주인되는 공장을 만들기 위한 생산 공동체였다. 그러나, 동지는 ‘미모사’에서 작업 중 불의의 화재를 당하여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동지들의 품을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