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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에 헌신해 오던 최온순 동지는 ’83년 3월 29일 시위예비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되어 1주일간의 조사를 받은 후 강제징집 당했다. ’83년 8월 14일 군에서 집으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새벽 4시께 숨을 거둔 뒤였으며 시신은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헌병대에서 나온 자가 자살이라고 통보하여 이에 가족은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 영안실의 시신을 1주일간이나 지키며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이에 군수사대는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의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통보를 얻어내어 동지는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 되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강제징집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안대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녹화사업 관련자료를 기무사에서 제출에 응하지 않아 아직도 진상조사를 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