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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외세를 배제하고 민족자립 경제를 주창한 남한의 대표적 민족경제학자였으며, ’70~’80년대 가혹한 민주화운동 탄압기간 동안 민주화 운동가로, 빼어난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며 많은 고난을 겪은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동지는 ’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6살의 나이에 빨치산으로 입산했다가 ’52년 8월 복부 관통상을 입고 하산, ’55년 서울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한국농업문제연구회’ 간사로 있으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하에서 한국 국민경제의 독자적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이론의 온상지 역할을 하였다. ’64년 동지는 소위 ‘인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어 도예종 은닉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고, 이후 두차례 복역과 구금을 당하였다. 동지의 민족경제론은 한국 자본주의가 종속의 길로 치닫던 시기에 민족의 자주성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해 ’70~’80년대 민중운동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