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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학과 학도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할 꿈을 소중히 키워왔던 동지는 민족민주운동에도 뜻을 같이 하다가 3학년 초에 군에 입대하였다. 평소 미제와 미제의 용병 역할을 하는 군을 혐오해 왔던 동지는 군에서도 동료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고민하였다. 동지는 범민족대회가 열리던 기간인 8월 14일 첫 휴가를 나와서 8월 18일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모교인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야간강좌 옥상에서 분신한 후 투신하여 끝내 마지막 길을 택했다. 그 후 동료 학생들과 수위에 의해 발견되었고, 19일 새벽 5시 운명하였다. 운명 직후 대경총련 산하의 학생들과 지역 민주인사들이 영안실에 집결하여 대책마련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12시 15분경 국군 기무사의 지휘를 받는 백골단과 전경 2개 중대의 침탈에 의해 시신을 탈취당하여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 당국은 사건이 확대되어 있는 것을 막기위해 유가족을 회유하여 화장하게 하였다. 유골은 구미에 있는 비산 나루터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