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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거센 파고에 이어 7월말부터 전국적으로 번져가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권익 투쟁은 대우조선에도 휘몰아쳤다. ’87년 8월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노조결성’, ‘임금인상’ 등을 외치며 농성을 시작했고 노조를 결성하며 회사와 협상을 시도하였다. ’87년 8월 22일, 김우중 회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옥포아파트 사거리에서 동료, 가족들과 평화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갑자기 경찰은 직격 최루탄을 난사했고 백골단은 흩어지는 시위대를 쫓아가서 짓밟고 옷을 발가벗기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아이들과 임산부까지 나선 평화시위를 무자비하게 짓밟던 와중에 동지가 직격최루탄을 맞고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운명하였다.

장례행렬이 민주열사들의 장지인 망월동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런 장지의 변경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장례를 무기한 연기했으나 정권과 언론은 사체를 볼모로 한 노동쟁의 방법이라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였고 공권력은 시신을 탈취하여 남원의 선산에 안장하여 동지는 죽어서도 편안히 눈감지 못하고 또 한번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