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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였다가 총상을 입기도 하였던 동지는 그 후 건축노동자로 일해 오면서 5.18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자기의 할 일을 모색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광복 40주년을 맞이했던 ’85년 8월 15일 오후 1시,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장소인 전남 도청 앞에서 동지가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다음 불길에 휩싸인 채 동구청까지 돌진하였다. 그리고 일주일만인 22일 새벽, 임종을 지켜보는 아버지에게 “절대 비굴해 지지 말라. 저 사람들(경찰)과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산화하였다. 경찰과 의사들은 동지가 낮에 운명할 경우 시신을 탈취하기 힘들 것을 예측하여 강제로 산소호흡을 시키다가 새벽에 아직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동지의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동지가 운명하자 아버지를 화순군 도안면 백지리 야산으로 강제동행시켜 가족장으로 동지를 매장시켜 버리는 폭거를 자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