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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부산대학교에 입학해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이 땅의 올바른 문학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했다. 학내의 대중적 문예잡지인 「부대문학」을 통해 문학과 운동의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조국통일에의 열정을 문학으로 형상화시키기 위한 ‘통일시 공동창작’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동지는 ’88년 8·15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해 지역 선전부 활동을 가열차게 전개하던 중 갑작스럽게 군 입대 통지를 받게 됐다. 입대 후 M16소총을 들고 동지가 겨눠야 하는 곳은 북한동포였으며, 결국에는 어머니, 형제, 동지들이었다. 동지의 의지와는 무관한 군 생활은 그에게 인간의 자주성을 억압하고 체제순응형의 인간으로 만드는 군의 폭력적 지배 방법, 미제국주의에 예속된 한반도의 수탈 구조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동지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의 품에 실하디 실하게 뿌리박은 진달래가 되고자 ’88년 10월 10일 부산대학교 재료관 건물 5층에서 투신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