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rning.gif

동지는 ’80년 8월 휴가차 간 경남 통영 비진도 해수욕장에서 불량배혐의자로 계엄군이 충무경찰서로 연행됐다. 동지는 충무경찰서 분리심사위원회에서 B상(上)급(근로) 판정을 받아 창원 39사단 삼청교육대에 입소해 4주 교육을 받고 3개월의 근로봉사 후에 재차 3개월의 근로봉사를 받아 낮에는 군부대 막사 수리와 작업을 하고 야간에는 교육으로 각종 얼 차례를 받으며 생활하던 중, ’81년 1월 16일 사회보호위원회에서 보호감호 2년의 결정을 받았다.

감호소에서 ’83년 11월 중순경 교도관의 폭행근절과 재소자의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집단 단식농성을 벌였고, 12월 7일 7사동으로 옮겨져 생활했다. 동지는 열악한 인권실태를 외부에 알릴 계기를 마련하고자 ’84년 10월 12일 오전 10시경부터 의무과 연출을 계속 요구하다 오후에 교도관에 의해 8동 지하실로 끌려갔다. 교도관 7~8명은 비녀 꽂기, 통닭구이 상태로 묶어 교정봉, 포승, 피대, 워커발로 약 2시간 동안 집단 폭행해 다음날 새벽 사망케 했다. 사망 당일인 12일 교도소 측은 교도소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했다. 검사는 다음날 오전 8시에 의사에게 형식적으로 부검을 의뢰하고, 13일 타살혐의 없음으로 조사를 종결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교도소 내 인권문제와 처우개선을 시정하도록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