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구.jpg

동지는 ’60년까지 한국일보 대구지사, 대구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다가 이후 상경하여 혁신계열 언론사인 민족일보 기자를 하였다. ’61년 5.16쿠데타 이후에는 시국강연을 한 이유로 혁명검찰부에 연행돼서 구속됐다가 석방된 후 요시찰 대상이 됐다.

동지는 석방된 후 서울로 와 대구매일신문 서울지사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했고 ’64년에는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대일굴욕외교반대운동 전국공동투쟁위원회 중앙본부 간부를 역임했으며, ’69년에는 삼선개헌반대운동을 했다. 삼선개헌반대운동을 과정에서 장준하 동지와 교류를 하게 됐다. ’70년 무렵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나전칠기 공장(남북공예사)을 경영하면서 자강학회 운영위원으로 계속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인민혁명당재건위’ 사건으로 수배되어 도피중인 동지를 자신의 공장에 숨겨준 혐의로 ’74년 6월 15일 검거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 운명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인혁당 사건을 조사했던 중앙정보부에 의해 수사를 받던 중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자행하여 피의자들이 ‘인혁당 재건위’라는 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사건을 조작했다. 동지는 수감된 후 중증 고혈압 환자가 돼서 ’75년경 병사에 입원을 반복하다가 10월 15일 새벽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발병 7시간이나 지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