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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은 ’91년 노조활동을 문제삼아 노조간부 손배가압류를 청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특히 ’99년 이후 단기순이익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02년에 다시 650명을 정리해고 하고, 138명을 교육발령했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노조의 활동에 손배가압류를 자행했다. 그리고 조남호 회장은 ’02임단협에서 노동조합에 임금동결을 강요하면서, 회장일가는 주식배당금 78억원을 챙겨갔다.

’02년 임단협이 타결되지 않고 해를 넘겨 ’03년까지 넘어갔다. 이에 동지는 ’03년 6월 11일 밤 고공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으며 농성은 129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사측은 동지가 고공농성을 하는데도 노동탄압을 계속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7월 19일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철회 등 주요현안과 임단협을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노사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이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7월 22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600여 조합원들은 크레인 밑에 수십 동의 천막을 치고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나 회사는 교섭을 회피하는 한편, 10월에 들어서는 조합원을 이탈시키기 위한 악랄한 행동을 시작했다.

한진중공업은 마산특수선지회 150명의 조합원에게 10월 15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손배가압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 결과 10월 17일 아침 조합원은 2백명으로 줄었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은 동지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게 하였고 동지는 “나의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