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길.jpg

’72년 10월 유신이후 유신반대투쟁이 조직되고, ’73년 8월 김대중 후보를 납치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계의 이목이 박정권과 중앙정보부에 집중되자 국내외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중앙정보부는 ’73년 10월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하였다고 발표했다. 그 명단에는 ’73년 10월 19일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도 들어 있었다.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73년 10월 16일 오후 2시경 중앙정보부 남산 분청사에 동생(당시 중앙정보부 요원)과 함께 임의 출두해 조사받던 중, 출두 3일만인 19일 조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했다. 은폐 조작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는 조사 중 고정간첩으로서 자신의 가족과 국내 조직망을 보호할 목적으로 감시가 소훌한 틈을 이용 7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자살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88년 검찰은 진정사건에 대해 자살이나 타살의 증거도 없고, 간첩여부를 입증할 증거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종결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증거 없이 간첩 혐의를 두고, 잠 안 재우기, 모욕 심한 구타 등 고문을 해 자백을 요구했고 간첩으로 단정하는 일련의 문서는 사후에 작성했고 현장검증도 조작했다. 감찰실 조사결과 차모씨 등에 의해 고문을 가한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중정은 조직적으로 은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