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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운명하기 전까지 전기노동자로 살아왔다. 2006년 시작한 인천 건설지부 전기분과의 투쟁은 그 해에 이루지 못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인천 상용직들의 결의를 모아 2007년 2월부터 인천의 단가업체 사장들과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는 결렬되고 6월 18일 인천 지방 노동위원회를 거쳐 마지막 협상을 하였으나 이마저도 인정되지 않아 다음날인 6월 19일부터 인천전기원 총파업을 하게 되었다.

총파업도중 수차례에 걸쳐 협상을 요구했으나 단가업체 사장들은 오히려 민주노총을 탈퇴할 것을 집행부에게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26개 단가업체를 하나로 묶어 교섭권을 유해성이라는 영진전업사 사장의 남편에게 위임한다. 유해성은 단가업체의 모임인 인우회에 ‘협약을 체결하면 영업권과 경영권을 빼앗겨 이익은 노조에만 있고, 회사에는 이윤이 없어진다’며 단가업체 사장들이 교섭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고,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회피했다. 정해진 동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근무했던 (주)상신전기에서 받았던 힘없는 노동자들의 서러움을 알기에 총파업투쟁의 선봉에서 투쟁했다.

총파업 투쟁도중 180명이던 조합원들이 각 회사 사장들의 회유와 협박, 생활고에 못이겨 총파업 130일이 지나 38명으로 줄어들었고, 남아있는 동지들은 끝까지 민주노조를 사수하자는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부, 한전등 어느곳에서도 동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않자 총파업투쟁 131일차 갈산역 총렵집회에 참가해 선두에서 투쟁을 하고, 영진전업앞에 도착해 경찰과 대치하던 중 대오 후미에서 달려오며 “전기원파업 정당하다”, “유해성을 구속하라”를 외치며 분신 운명하였다. “투쟁하지 않는 요구는 구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