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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64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후, 표구기술을 배워 ’88년 1월경 인천에 있는 협신사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였고 성격은 내성적이고 온순한 편으로 대인관계와 직장생활은 원만하였다.

 ’89년 2월 말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다. ’89년 2월 27일 임금인상, 상여금지급, 연월차 및 생리휴가 실시, 노동조합 인정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5일간의 파업에 들어갔다. 협신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이 미약했으나,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여건을 노동조합을 통하여 개선시키고자 동지는 ‘평화의집’과 ‘인천민주청년회’에서 노동법 관련 교육과 토론 및 외부의 집회에 연대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가졌다. 동지는

’89년 10월 28일, 민주노조 재건을 위해 ‘내일을 위한 집’에서 교육 및 상담을 받고, 주안역 인근에서 술을 마시다 말없이 술집을 나간 뒤, 새벽 주안4동 주차장 앞 노상에서 둔기로 턱을 맞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당시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여 미제사건으로 종결처리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여건을 개선하고자 ‘평화의집’과 ‘민청’에서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으며, ’89년 2월 27일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는데 회사측의 불법ㆍ폭력적인 탄압으로 노동조합이 와해되자 민주노조 재건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경찰은 노동조합 재건위 관계자를 연행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욕설과 폭행 등 강압적인 수사를 하였으며, 현장보존이나 당시에 수거한 피묻은 점퍼, 현장의 혈흔, 보도블록 조각 등에 대한 감식이나 혈흔감정 등은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입고 있던 피묻은 점퍼를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전단을 만든다는 이유로 세탁해 증거물을 훼손하는 등 범인 검거를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