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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4년 서울대에 입학 학생운동 동아리인〈경제법학연구회〉에 가입하여 각종 시위와 집회에 참석하였다. 동지는 ’86년 하반기 이후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현장 활동을 준비하였고, 과외를 하여 수배자를 돕기도 하였다. 군입대 직전까지 민주화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노동현장으로 이전을 준비하였다.
동지는 경찰에 구류와 부상을 당한 후 가족들의 권유에 의해 ’87년 4월 군에 입대하게 된다. 9월 8일 부대내에서 분신한 상태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훈련소에서부터 보안사령부 및 보안부대, 지휘관 및 부대 군종부에 의해 보직이 변경되는 등 일상생활 깊숙한 부분까지 체계적으로 관찰·관리되었다. 운동권 출신 관찰사병이라는 사실이 부대원들에게 알려져 얼차려, 언어폭력 등 차별 대우를 받았고, 유격훈련 중에는 조교의 구타로 팔에 부상을 입기까지 하였다. 기무사의 자료 비협조로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가 완전히 밝혀지지 못하였다. 윤석양 양심선언에서 밝혀진 ‘서울대생 동향파악 대상자’ 378명의 카드에서도 최우혁의 카드가 존재하는 점 등 보안사의 지속적인 관찰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