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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학업에 열중했던 동지는, 참교육을 열망하는 전교조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감동을 받고 학교에서의 비교육적인 현실과 참교육 운동에 나서야할 권리를 깨닫게 되었다. 고교 2년 때 가정 형편으로 휴학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학교 측에서는 “우리 학교에 전학 오려면 몇 천 만원을 낸다. 휴학계를 내면 다른 학생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생기지 않으니 자퇴를 해라”, “가난해서 못 다닌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지금 휴학하면 못 다닌다. 나갈래!”라며 학교를 그만둘 것을 종용했고 동지는 그 후 자신의 학교를 ‘무서운 학교’라고 하며 그 충격을 표현하였다.

결국 휴학을 하고 지하철 신문판매,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고 ‘버림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조그만 용역회사를 다니던 중 ’90년 9월 7일 오후 2시 20분, 충주시 성서동 한 건물 3층 옥상에서 “농민이여, 농민의 깃발을! 노동자여, 노동의 횃불을!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후 투신, 서울 강동 병원에서 투병 중 9월 8일 새벽 5시경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