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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고민해왔던 동지는 내성적이면서도 때로는 누구 못지않게 활발하게 생활했으며, 자치공간의 청소를 도맡아 할 정도로 근면하고 성실하였다.

동지는 교원 종합대책안 반대투쟁 시 직격 최루탄으로 다리골절 부상을 입기도 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91년에는 총학생회에서 사회부 차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4학년 과 대의원 활동과 광주전남 교사 청년회 간사로도 활동하였다.

분신하기 일주일 전의 생활을 살펴보면 동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아리 방에서 책을 정리하며 동기와 후배들이 갖고 싶어 하는 책들을 나누어 주었고, 부모님과 할머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는가 하면 5일 일요일 오전에는 망월동에 참배를 다녀왔다. 오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할머님께 선물을 드리고, 6일 아침 일찍 광주에 올라와서 동기와 후배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7일 저녁에는 10여명의 동기들에게 안부전화와 더불어 열심히 생활해 나가라며 격려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의지를 재차 다져가며 죽음을 준비하였다.

8일 12시 45분경 음악관 뒤편에서 ‘임용고시철폐, 주한미군 철수와 기만적인 김영삼 정권을 반대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