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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일에 대한 욕심과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강했기에, 그 열정적인 품성으로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앓아온 기관지 천식으로 조금만 뛰거나 피곤해도 그날 저녁 꼭 병원으로 실려 가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그런 몸도 동지의 통일에 대한 의지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95년 학회지 「사람」 편집장을 지냈으며 영남대 오월 투쟁본부산하 오월학살자 처벌투쟁 선봉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투쟁의 신심을 다져갔다.

’96년 8월 13일,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학교 선후배 50여명과 상경 길에 올랐다. 대회장인 연세대가 원천봉쇄가 되어 동국대로 장소를 옮겨 숙소조차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신문지를 덮고 하루 밤을 보낸 동지의 몸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대회장 진입을 위해 모두 연세대로 떠났지만 동지는 시위도중 다친 몇몇 동지들과 동국대에 남아있었다. 동지는 14일 오후 5시 총학생회와의 통화에서 “몸이 안좋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원천봉쇄로 많은 사람들이 연세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통화한 후 바로 약간의 간식을 먹는 도중 음식물이 기도에 막혀, 뇌사상태로 쓰러져 결국 9월 9일 21세의 꽃다운 나이로 조국통일의 희망새가 되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