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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66년 서울대 농대 농가정학과를 졸업한 뒤 정읍농고에서 후학양성에 힘을 쓰다가 ’69년 대학시절부터 고민해온 고된 농사일과 봉건적 억압에서 고통받고 있는 여성농민의 권익향상을 몸소 실천하기 위하여 상계동에서 비닐하우스 시설원예 농사를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동지는 농업을 살리고 예비농업인의 실습터이자 농업기술지도소, 나아가 예비농민들의 어머니로서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시작하였다. ’75년 지역에서 지역탁아소와 어머니 자치활동으로 작은 공동체의 모범을 만들었고, ’77년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가톨릭농촌여성회’ 설립에 산파역할을 했으며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가농여회는 ’85년 가톨릭여성농민회로 성장하였고 동지는 다시 회장을 맡아 열성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후 동지는 성남에서 지역운동을 지도하여 각종 연합단체의 공동대표로, ’80년 민주화운동을 지도하였다. 이후 전국여성농민회 경기도 총무를 역임하였다. 노태우군사정권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남편이자 동지인 김준기 선생의 뒷바라지와 자녀교육 등으로 많은 어려움속에서도 ’90년 성남 ‘큰우리 소비자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농촌운동과 생협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93년 동지는 갑작스런 위암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93년 9월 11일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