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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환 동지는 몸집은 왜소하였지만 마음은 큰 사람이었다. 어용노조의 아성인 부두에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의 틀을 잡기위해 동서분주 했던 화물연맹의 숨은 일꾼으로 6년간 열정적으로 활동하다 2001년 9월 12일 짧은 생애를 마치고 영면하였다.

말수가 적었지만 동지애만큼은 누구로 따를 수 없이 따뜻하기만 했던 강희환 동지는 거친 노동자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동지를 보면 밤을 새워서라도 술잔을 기울이면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었다.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화물연맹의 발전 전망을 내다보며 산별노조 건설과 미조직사업에 대한 고민을 안고 활동해 나갔다.

강희환 동지는 활동 당시 직책은 운송하역노조 교육선전국장이었지만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운송하역노조의 모든 일들을 거뜬히 해 내었으며 동지의 진가는 지난 2000년 신선대, 우암부두 노동자 파업투쟁 때 더욱 빛났다. 어용노조의 마지막 아성인 부두에서 터져 나온 민주노조 사수의 함성은 정권과 경찰의 폭압적인 탄압을 불렀지만 단결의 힘으로 두달에 걸친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승리의 전망을 그리기가 어려웠던 투쟁이었지만 흔들림 없이 조합원들을 이끌어주고 때론 친구가 되어 어려움을 나누며 투쟁과 시련 속에서 만들어지는 진정한 동지애를 보여주었다.

강희환 동지의 화물운동에 대한 열정은 2001년 금강산에서 열렸던 5.1절 기념 남북노동자통일대회를 다녀오면서 더욱 꽃피우게 되었고, 부산지역노동자주통일실천단을 건설하는 기초를 만들어 내었다.
죽음의 순간에 유서 한 장 없어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동지들에 대한 사랑과 운동에 대한 열정은 많은 동지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