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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지병인 간암으로 8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교육민주화 활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며 경기·인천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50년을 바라보는 반백의 나이에 뒤늦게 교육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90년 9월, 53세의 현직 조합원으로 영면하기까지 동지는 오직 참교육의 나무를 일구는 것이 꿈이었다.

동지는 대학 3학년 때 등록금을 마련 못해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였고, 군에 있으면서도 교사의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어 예편을 서둘러 서른여섯의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결국 교단에 섰었다.

’92년 4월 18일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 참교육비 제막식에서 동료교사는 추모시를 통해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밥풀을 뜯어 먹으며 숨 조이고, 복종하고, 양심을 파는 동료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직선의 말이 살아 숨쉬고, 진실이 즐거이 깔린 세상이 올 때까지 마음 비우고 나를 바쳐 섬기라” 하던 동지라며 그의 정신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