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jpg

동지는 ’85년경에 인천 서구 경동산업에 입사하여 일하면서 ‘디딤돌’이라는 노동자 친목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국면에서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간에 걸쳐 사측의 노동법을 무시한 해고와 부서 이동, 일방적인 단체협약 체계 관행에 항의하여 완강한 파업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사측은 경찰을 동원하여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8명을 구속하고 500여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였다. 해고자들은 ’89년 8월 31일부터 부당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다. 사측은 농성자들의 대화요구를 거부하고 매일같이 구사대 200여명을 동원하여 폭력을 자행하고 해고자들의 가족까지 짓밟았다.

해고자 3명이 부평에서 연행당한 상황에서 9월 4일 3시경 사측은 경찰과 200여명의 구사대를 동원 강제 해산시키고자 하였다. 강현중 동지가 나와 같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오른편에 싸우다 감옥에 갈 사람은 왼편에 서라며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결의하자 동지는 태극기를 목에 두르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절을 하고 어머니의 노래, 애국가를 다함께 불렀다.

동지와 김종하 동지 등 3명은 함께 본관3층 징계사건의 주모자인 이사실에 들어가 마지막 담판을 하려하였다. 하지만, 징계를 받지 않으면 구속시켜버리겠다는 뻔뻔스런 대답에 동지는 이사를 잡고 불을 켜 분신 항거하였다.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동지는 9월 15일 오전 9시 반경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