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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87년 역사교육과에 입학하여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청주사대 수호투쟁에 앞장서 싸우다 유기정학을 받은 이후 학교와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갔다. 꾸미지 않은 소탈한 모습의 동지는 성실하면서도 소박한 생활가운데서 과내에서의 많은 동료 및 선후배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88년 흥사단 아카데미 회장과 동아리 연합회 학술부 차장을 지내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동지는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88년 통일선봉대에 참가하면서 투쟁의 의지를 다져나갔고, ’89년 제20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집회들을 선두에서 이끌며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활동했다.

학원자주화투쟁 기간에 7일간의 노천단식 중 몸에 이상을 느꼈으나, 단식을 끝낸 후에야 병원에 입원하여 진단을 받는 투철한 책임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농활위원장으로 일할 때 동지의 병이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쓰러질 때까지 약을 먹어가며 농활을 지도했다는 데서도 동지의 책임감은 여실히 나타난다.

결국 동지는 ’89년 2학기 투병생활에 들어가 ’89년 9월 15일 동료들의 비통함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