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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부모형제는 버려도 조합 활동과 동지들은 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굳은 신념을 가지고 투쟁의지를 불태웠던 투사였다.
동지는 ’89년 6월 금성사 창원대로 투쟁에 참가하였다가 수배, 구속되었고 ’92년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한 굴뚝 투쟁을 벌이다 또다시 구속되었다. 2차 구속된 상태에서 동지는 재판 도중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 채 재판을 진행하는 것에 항의, 느슨하게 풀어진 수갑을 풀어 재판장에게 던져 법정모독죄로 3년의 실형을 추가 선고받고 청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동지는 계속되는 고난의 실형 속에서도 조합원들과 동지들에 대한 꿋꿋한 사랑을 잃지 않고 힘이 되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방 수형생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94년 8월 진주 교도소로 이감되었고, 그 해 9월 18일 독방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동지들 곁으로 돌아왔다. 교도소에서는 자살로 발표했으나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