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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에서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용품 동지는 호텔 주방에서 일하며 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입학, ‘한식요리의 명인’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다니던 호텔이 1994년 부도가 나 직장을 잃게 되자 이듬해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 ‘농사꾼’으로 변신했다.

 칠순의 노부모를 모시고 논 8000평, 밭 2000평, 농원 700평을 운영하며 열심히 사는 농민이었고,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소속 회원으로 남면 농협 감사, 지방 주간지 객원기자로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섰다. 쌀협상 국회 비준안 국회 본회 상정을 앞두고, 그는 “농촌이 정말 어렵다. 정말 농촌문제 현실성 있게 잘 세워야 농촌이 산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농촌을 위해 이 한 목숨이 농촌에 큰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