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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에 대한 열정은 대학인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민중과 함께 하고자 몸부림치게 했고 2학년 때는 1년간 야학활동을 왕성히 전개하기도 했다.
동지가 시위주동을 결행하기 직전인 ’83년 가을, 소위 ‘야학연합회’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당국으로부터 받은 압박은 동지에게 심한 심리적 고통을 주었고, 또한 동지는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83년은 11월 11일 레이건 방한이 예정되었고. 모든 민주세력의 결론은 같았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대리전쟁터가 될 수 없었고 일본의 재침략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일치 속에 6명이 시위주동을 결정했다. ’83년 11월 8일 낮 12시 35분경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고자 도서관 6층 창문을 통해 밧줄을 타고 5층 베란다로 내려오기 위해 창틀에 올라서려고 할 때 “저 놈 잡아라”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열람실에 진을 치고 있었던 사복경찰과 수위들이 달려들었다. 난간으로 내려오던 동지는 기관원 10여명의 제지로 15M 아래의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 뇌골절상을 입었다. 결국 동지는 11월 16일 오전 11시 22분경 1주일간 병상에 있다가 운명하였다. 동지의 시신은 운명한지 불과 6시간 만에 욕된 손들에 의해 벽제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여 가족들에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