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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부터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던 동지는 대학 졸업 후에도 경기북부지역에서 청년단체를 만들고 일꾼들과 함께 노동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단체를 통한 열성 일꾼을 만들어 내고 지역을 확대했다.’02년 온 나라가 ‘월드컵 4강’ 열기에 취해 미군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에 침묵할 때, ‘의정부 청년회’ 창립멤버로 활동하던 동지는 미선이와 효순이의 언니들이 다니던 의정부여고 학생들과 함께 눈물의 촛불집회를 조직해 미국을 반대하고,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에 분노하며, 미국에 강하게 항의하는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을 모으는 큰 역할을 했다. 이것은 여중생의 부모님을 설득해 투쟁의 공간에 나서게 하는 등 동지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이렇듯 짧은 생애를 뜨거운 열정으로 불태우던 동지가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것은 ’03년 11월 20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미 2사단 캠프 레드클라우드 앞에서 미군 무죄평결 1주년 기념 촛불집회에 참여한 뒤 집으로 돌아오던 의정부역 철길 위에서였다.
경찰은 동지가 철길에 누워 있다 달려오던 열차에 치였다며 자살 또는 사고사로 결론 냈지만, 당시 동지가 많이 취하지 않았고, 열차 하체 바닥이 인체에 닿으면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시신이 훼손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사고가 나기 30분 전쯤에 부인과 일상적인 통화를 한 점으로 미루어 동지의 죽음에 의문점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