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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경남 고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스무 살에 인천으로 상경하여 합판공장에서 공장생활을 시작하였다.
’93년 경인운수의 전신인 영화교통에 입사한 동지는 입사 초부터 노동조합의 대의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회계감사를 역임하며 노조간부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누구보다 노동자의 권익확보를 위해 열성적으로 투쟁하였다.

특히 택시노동자들의 염원인 완전월급제 쟁취를 위한 민주택시연맹 인천본부의 65일간의 총파업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긴 파업기간동안 동지들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사측은 부당한 불성실근무 제재와 임의적인 성과급 감산, 개인택시 경력을 축소 조작하는가 하면 급기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동지에게 참석을 통보하였다. 평소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았던 동지는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회사가 해도 너무한다”, “회사를 가만히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며 분개하였다.

결국 동지는 개인택시 수령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 측의 부당한 노동탄압에 맞서기 위해 새벽 0시 30분 경 회사 내의 차고지에서 자신의 차량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하여 운명하였다.